한국에 온지 곧 반년이 되었다.
홈 홈 스윗홈, 미국에서 혼자 지내면서 참 많이도 생각했던 가족의 의미가 있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지금 식구들도 각자 많은 생각이 있었고
다시 만난 우리들은 서로의 사랑 방식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커졌고, 그것은 각자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때로는 위트로 때로는 말없는 응원으로 보듬고 채워주고 있다는 것에서 느껴진다.
의외로 생각 못했던 한가지는 이제 친지들의 대소사에 참여되는 것이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지고 이질감이 많이 들었다.
동생은 석사를 포기하고 학교를 자퇴했고 일을 시작했는데 그 덕분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잘 생각한것 같다 동생은 아무래도 학문에 대단한 열의가 있는 타입은 아니다.
이때까지는 혼자 살 생각만 하면 됐고 돈 필요하면 일하면 되고 그랬다면 한국에 온 후로 식구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알게모르게 부담이 꽉 차있었던것 같다. 나 스스로도 어쩌질 못해 매일같이 휘청이는데 나는 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말에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돈도 없으면서 월세 구십내는 집에 들어올때 주위에서 충고를 했다.
너가 이때까지 고생없이 살아서 현실감이 없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고, 없으면 없는대로 맞춰서 살아야지 욕심이며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또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렇다며 1년이면 얼마가 모이는 것인데 쓸데없는 낭비인것 같다고도 했다.
괜한 눈물이 났다. 상대가 어떻게 산지 모르는 사람이 상식적인 얘기를 건넨 것에도 이렇게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현실감이 뭔지 잘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상의하면서 불안한 속에 한가지 마음을 정한 것은 우리가 앞으로 원하는 것에 집중할수 있는 힘이었다. 돈으로 구지 계산을 해보자면 1년에 천만원 세이빙이 아니라 1년에 그 열 배의 가치를 보게 될 투자.
내 안에 수많은 미친년들이 산다. 그것이 싫어서 내 선에서 할수 있는 노력들은 참 많이도 해본 것 같다. 효과가 좋았던 삶의 방식들도 있었고, 어떤때는 참 짜릿하게도 온 세상이 나와 하나인듯 나는 거기에 펄떡이듯 반응하면서 그 세상이 감사해서 참 시원하게도 산 적도 있었고, 방향을 잘못잡아 들어갔더니 온 정신이 황폐해지며 너덜너덜한 마음을 질질 끌며 지낸 때도 있었다. 그 수많은 미친년들은 나이거나 내가 아니거나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하는 태도
내안에 조금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키우며 살아갈 적에는 만나는 이마다 아름다움이 반짝이듯 캣치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안의 병든 닭속으로 기어 들어갈 때에는 온 주위가 아픔으로 가득했다. 나의 세이프 존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 속 이었겠지? 슬픈 일이다.
얼마전 한 사람과 오래도록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자주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근데 그 사람이 무슨 말 끝에 그거 너 탓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핑 도는걸 겨우 참을수 있었다. 오래전 영화속 그렇게 눈물을 흘리게 했던 그 대사처럼 누군가 내게 그말을 해주었고 나는 그 말이 너무 듣고 싶었었는지 그렇게 속으로 눈물이 났다. 며칠후면 다시 내 탓이 되버리는 나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또 아무소식없이 멀어져버리는 나도.
망설이고 또 망설이고 마지막까지도 버스티켓을 취소하고 날짜를 변경해가며 병원을 찾았다. 얘기는 많이도 해봤고 하기도 싫고 때때로 좋은 상대를 만났을땐 말할때마다 후련함 뒤에 복병처럼 달려드는 그 말들속에 영영 갇혀버릴 것 같은 그 찝찝한 기분 근본적인 해결책의 실마리도 될수 없다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도 병원을 간 이유는 뭐였을까. 도움이 필요하고 필요하면 가서 묻고 구하는 것은 내 전문인데, 유독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것에는 이렇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존심이 상하고 그러는지. 다 내탓이라서 그게 너무 고개를 들수 없을 정도로, 이것도 잘난척인지 모른다.
선생님께서는 젊은 사람들에게는 습관을 잡아주려 노력하고, 나이든 사람들에게는 약처방만 하신다고 하셨다. 마음에 쏙 들었다.
뇌파검사를 통해 자율신경계의 작동이 정상적인 범위가 아닌 부분을 직접 확인하고 알고보니 내가 생각했던것과는 차이가 있었고 그렇게 수치화 되는게 되려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 기분은 희망이었나보다.
나는 건강해지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번 했는데, 그게 뭔데 라고 묻는 선생님에게 글쎄요 즐거운 생각과 어두운 생각이 있다면 하루에 즐거운 생각을 쬐끔 더 많이 하는거요? 라고 대답하더라. 그리고 선생님이 묻는 몇가지 질문에 대답 할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이었다. 선생님은 앞으로 스스로에 대해 많이 관찰해봐야 하는데 지금은 어려울테니 일단은 외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고 벗어났다고 생각한 그 작은 이야기들이 다시 건드려졌을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물을 쏟아내는 경험을 또 했고, 앞으로 내가 미쳐몰랐던 이야기들이 튀어나올까봐 두렵기도 하고 그렇지만 다시 피하거나 단절하지는 말자고 스스로에게 부탁했다.
요즘 한 학생을 보며 내게 보여주는 모습이 참 코끝이 시큰하다. 머리는 느리지만 우직하게 차근차근 제대로 소화하고 흡수해나가며 나와 약속을 지켜나간다. 그 친구와 나는 서로 약속을 잘 지켜나가며 그것은 믿음으로 신뢰가 만들어져간다. 아름다운 일이다.
또 한 학생을 보며 참 피식 웃음이 난다. 재빠른 두뇌회전 요령찾는데 빠르고 임기응변이 빠르다.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아는데 노력을 안하니 그 하나도 자기것으로 완벽하게 흡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둥글링둥글링. 가끔 이런저런 완벽한 핑계를 대는데 그게 핑계라는 것이 한눈에 보인다. 짜증이 나다가 생각해보니까 나도 딱 저런 학생이었겠구나 싶으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나간 옛 선생님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이제야 어쩌면 비로소 진심으로 '학생' 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의 어떤 모습이 때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하는 걸까?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원래가 더 너그럽고 풍요로운 곳이니까? 그들은 외로우니까? 어딘가에 상처받고 기댈곳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왜 내게? 나는 미친년인데?
내게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오는 그녀를 보며 내가 이런 따듯한 마음을 받아도 되나 나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으니 슬그머니 두려운 마음이 인다. 난 누구한테 버림받고 상처받은 기억은 없는것 같은데 그냥 잘 모르겠다 깊이 친해지는것이 어렵다. 불가근 불가원 이말은 항상 내게 난제이다.
너의 어떤 모습이냐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내가 두드렸거든.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었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오늘도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