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8, 2008

묘미

1
내가 더 큰 아픔을 겪어 보았다고 해서 다른이의 아픔을 가벼운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또 다른 시각으로 봤을때 세상은 공평하다고 삶은 공평하다고 여길수 있는 사실이 거기에 있다. 내가 사기당하고 갑자기 다음달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나, 그가 이별의 아픔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우리에게 그렇게 다른 모양으로 앞에 놓인 각자의 짐의 크기는 아마도 비슷하리라는 생각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당연히 상대의 아픔을 그가 느끼는 만큼 그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가 아플때엔, 나 또한 아팠던 때를 떠올리며 하지만 조용히 등을 다독이며 따듯한 내 마음을 전해줄 수 있지는 않은 가 하고. 그렇게 사람과 세상과 더불어 맑은 미소를 한번 더 지을 수 있을 때에 나의 아픔따위는 어느샌가 씼긴듯 사라져버리는 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닌가 하고..

2
유난히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말그대로 비행청소년의 길을 걸었던 한 친구. 그녀의 억울한? 가족사와 집안환경은 그녀에게 오히려 죄책감없이 비행할 수 있는 핑계가 되기 좋게됐고, 학교를 벗어나 더욱 더 삐그덕 거리게 되면서 이제는 그녀의 위치가 어느곳에건 차라리 학교에서만큼도, 소속하기 힘들어 지게 되었다. 반쯤은 시니컬하게, 어디에도 길들여지지 않게, 거침없이 사는 것인줄 알았는데 그 시간들은 결국 그녀의 영혼을 구속하고 옭아매어 이제는 몸마저 그녀뜻대로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있었다. 자유롭다는 것은 그런게 아닌것 같다. 나는 똑같은 출발선이 아니라는 것에서 억울하다고부터 시작하는것이 아니라, 나는 참 유니크~하다라고 주문을 걸며 처음은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밭에 밝음의 긍정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이다. 세상이 밉고 내처지가 비관될수록 그 독한마음을 되려 사람들의 유치하고 비겁한 시선을 무시하는 쪽으로 키우는 것이 낫다. 처음뿌린 씨앗은 오히려 나를 외롭게 고독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세상은 나를 빼고 모두 즐거워 보인다. 두번째 뿌린 씨앗도 아련하기만 하다. 나만 왜 이렇게 산다고 난리법석인걸까. 세번째도 네번째는 회의마저 들지 모른다. 이제 조금은 알겠는데 나는 너무 외롭다. 하지만 언젠가는 점점 나도 모르는 어느새 나의 억울함은 감사함으로, 동정을 바라던 마음은 세상을 향한 연민으로, 오히려 더 많은 아름다운것들을 일굴수 있는 그러한 됨됨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녀가 이제는 더 아픈사람을 위해 울어줄수 있고 손내밀어 줄수 있고.. 더욱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지며 점점 더 아름답게 변해가는 것은.. 정말이지 인생의 묘미가 아닐런지~..

3
한국은 정말 착하게 살기엔 글러먹었어.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정말?? 평균맞추기 좋아하는 시선에서 조금 벗어난채 아름답게 살고 계신 분들께 묻고 싶다. 아니지요. 아니지요? 이곳에 살면서 언제나 느끼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세상은 정말이지 솔직하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결국은 내게 웃어준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에 와서도 역시나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학교성적이 그야말로 참 창피하게 되었다. 그 성적으로는 뭘하려해도 더 이상 기회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all F가 도배되어있었으니.. 그러다가 이제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건방지게 잘난척을 떨며 고등학교 중도 포기하고, 띵까띵까 사는데 그 중에도 하나씩 하나씩 졸업하며 명문대에 진학한 친구도 있었고, 약에 취해 음악에 미쳐 자기 길을 떠난 친구도 있었다. 나는 이도 저도 아니었다. 대채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아니면 무엇을 향한 발악이었는지.. 내 모습은 참으로 못나고 비겁했다. 그리고는 조금 늦었지만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갔다. 처음의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했고 그렇게 첫학기 성적에 all A를 받았다.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따는 성적이었지만 내게는 놀라웠다. 그러던 어느날인가는 이 말도 안되게 극과 극을 달리는 성적을 보고받은 학교 dean에게서 호출이 왔다. 지난 5년여에 걸친 성적표를 앞에 보이며 설명을 해보라고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지금 착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보여질텐데, 그냥 무지 아팠었다고 거짓말할까. 찰나의 고민을 하다가 그냥 술술 있는 얘기를 그대로 해버렸다. 왠지 얼굴이 굳어가시는듯도 하고.. 이미지 개차반되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 그래도 차라리 홀가분했다. 조용히 듣고 계시던 dean께서는 잠시 머뭇하시더니 우리학교를 졸업해서 더 큰 사람이 되어주길 바란다며 성적표에 있는 all F를 꿈만같이 영구 삭제시켜 주셨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성적표는 또다른 꿈을 마음껏 꿀수 있도록 3.7의 GPA로 다시 태어났다. 내가 세상을 향해 느꼈던 첫 기적이었다. 인생의 묘미란 그런거 아닐까. 실수 했다면 솔직하게 인정할수 있는 용기, 그리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또다시 오늘을 노력하는 용기.. 도저히 씻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죄들, 죄책감들은 이제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씩 풀어야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도망가면 안되고 숨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변해가는 내가 바로 인생의 묘미라 불러도 좋은 기적같은 일이 아닐지..

4
비판하는 것 보다는 상대의 의견에 플러스 알파, 긍정으로의 생각의 물꼬를 틔워주는 것이 멋있다. 그렇게 상대에게 던져주어서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래도 그 마음에 생채기내지는 않았으니 좋고, 상대가 받아들인다면 참으로 고마운 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나또한 그 창조의 물결에 발을 담굴 수 있었다는 것 바로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꽃밭에서 똥을 발견하기 보다는 똥밭에서도 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정겨운 사람들과 정겹게 어울리며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마음들을 모아 사람답게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게 살고 싶다.